지난 2월 28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청은 전했다. 정진석 추기경이 노환으로 맞게 되는 죽음을 잘 준비하고 싶다면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실을. 1931년생인 정 추기경은 최근 병세가 악화되어 서울성모병원에 입원 중이라 한다. 뇌사 시, 장기기증과 사후 각막기증도 서약했단다. 추기경 자신의 통장 잔액도 모두 서울대교구가 운영하는 무료급식소인 명동밥집 등을 비롯해 몇 곳을 직접 지정해서 봉헌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 주변의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저의 부족한 점을 너그러이 용납하여 주십시요.”라고 직접 펜으로 감사와 용서문을 썼다는 것이다. 참으로 멋진 삶의 마무리 과정 아닌가.
한 인간의 삶이란 긴 것 같지만 이리도 짧은 것이다. 어찌어찌 살다 보면 죽음의 문턱이 코앞이란 말이다. 그 어떤 권력자나 재력가도 그렇다. 이에는 불평등이 없다. 진시황이 생에 미련을 갖고서 무척이나 몸부림을 쳤지만 몇 년이나 살았던가. 불과 49년이었다. 현세대 최대의 현대 재벌가 고 정주영 회장을 비롯한 영자 돌림 형제들도 모두 70대에서 80대에 유명을 달리했다. 북한에서 최고의 영약이라는 백두산 산삼을 비롯해 최고의 명약과 음식들을 다 먹었으리라 추정되는 김일성, 김정은 부자도 수명이 길지는 않았잖은가. 인간의 수명은 우리의 힘으로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없는 것인 것 같다. 그야말로 인생사 뜬구름이요 부평초 아닌가. 하지만 정치권은 어제도 오늘도 악다구니 속에서 서로를 악랄하게 공격해대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죽여가고 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1940년생이다. 만 80세다. 앞으로 얼마의 수명이 남았을까. 잘 마무리하길 바란다. 그 나이에 혹시라도 지극히 세속적인 욕심일랑은 갖지 말고.
그동안 살아온 과정에서 아무리 잘했다고 하더라도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면 그 끝 모습만 기억하기 마련이니까. 물론 지나왔던 인생사를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정치권에서 말깨나 하는 사람들의 나이도 대부분 60대를 건너 70대를 타고 넘어가는 경우가 태반일 것이다.
인생사 부질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길 바란다. 항상 웰빙(Well-being), 웰에이징(Well-aging), 웰다잉(Well-dying)이라는 세 단어를 가슴에 안고서 실천해가다 보면 희미한 미소만이라도 피워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더더욱 그렇다. 이와 같은 바람직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선 나눔을 실천하는 것도 한 방안이라 생각한다. 꼭 물질의 나눔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갖고 있는 물질을 부족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마음만 나누는 것도 그 또한 크지 않겠는가.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라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아무리 물질이나 기회를 많이 준다고 하더라도 던지는 말 한마디가 독하면 그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요즘 시중에서 떠돌아다니는 말들을 봐보라. 거의 독설이거나 비아냥거리는 등의 악취 쓰레기들이다.
특히 정치권에서 난무하는 것들은 국민들에게 고통만 주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잘났다고들 영일이 없이 토해내고 있다. 이것이 아귀들의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정진석 추기경은 평생 신부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그러니 시중잡배 내지 모리배들 같은 삶을 살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그럼에도 자신의 부족한 점을 너그러이 용납해주라고 했다. 우리가 깊이 되새겨볼 대목이 아니겠는가. 평생을 하느님의 종으로 살아온 정진석 추기경에게 하늘의 은총이 내리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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