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 가운데 병사(病死)한 경우도 있다. 40대의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년~기원전 322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는 마케도니아 필립 왕의 아들인 알렉산더 소년을 가르쳤다. 이 소년이 후일 알렉산더 대왕으로 등극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플라톤)과의 관계에서처럼, 이 제자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물론 대왕은 스승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줌으로써 사제 간의 기본적인 틀은 유지했다. 그러한 이유로 알렉산더가 바빌론 원정 도중에 사망하자마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즉각 위기가 닥쳐온 것으로 추측된다. 즉, 아테네 시민들은 환호 속에 마케도니아 당을 붕괴시키고 독립을 선언하였던 것이다.
상황이 이에 이르러 아리스토텔레스는 처음에는 정치범으로, 다음에는 ‘신을 모독했다’는 구실로 고소를 당하고 만다. 과연 그는 어떻게 처신했을까? 소크라테스처럼 대담하고 의연한 자세를 유지했을까?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이자 제자인 테오프라스토스에게 리케이온(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 시 외곽에 세웠던 학원)을 인계하고 칼키스로 피신해버렸다. 이때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아테네 사람들로 하여금 두 번씩이나 철학에 대하여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아테네인들의 철학에 대한 첫 번째 죄는 소크라테스를 죽인 일이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동이 비겁한 도주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당시 아테네의 피고인이라면 누구나 스스로 추방당하는 쪽을 선택할 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이듬해, 상세하고도 사려 깊은 유언을 남기고 오랫동안 앓아왔던 위장병으로 타계하고 말았다.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기원전 341년경~기원전 270년경, 그리스 철학자)는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고, 이 행복은 즐거움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지 못했다. 말년 무렵 방광(오줌통)에 돌이 생겨 일흔 둘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무려 14년 동안이나 심한 통증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지막 이별의 편지에서 쾌락주의자다운 감회를 피력하고 있다. “오줌이 나오지 않는 괴로움과 이질(痢疾)로 인하여 나는 말할 수 없이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철학적인 대화를 상기하면서 생겨나는 내 영혼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고통을 견뎌냅니다.”
이처럼 그는 모든 고통과 두려움을 철학적인 명상으로 이겨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평소 그의 철학은 무엇이었던가? ‘존재하는 것은 오직 빈 공간(無)과 그 안에서 운동하는 원자뿐’이라고 하는 원자론이 그의 형이상학이었다. 에피쿠로스는 이러한 철학에 입각하여 인류의 헛된 망상과 미신을 쳐부수려 하였다. 이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요괴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신들이 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 역시 미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그는 심지어 무녀(巫女=무당)였던 자기 어머니의 주술(呪術)마저도 부인하였다.
나아가 에피쿠로스는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죽음이란 육체와 더불어 영혼의 원자가 흩어져버리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육체가 죽은 후에도 영혼이 살아남아 내세에 머문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에는 설령 이러한 철학을 머릿속으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에피쿠로스가 평소 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으며, 아타락시아(어떤 일에도 산란되지 않는 안정된 마음)를 강력히 주장했던 점에 비추어보면 이러한 일(죽음 앞에서 의연했던 일)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으리라 예상해볼 수 있겠다.
광주교대교수, 철학박사.소설가 /강성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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