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숲에 에워 쌓인 한 소녀의 수수께끼 표정. 단 한마디의 말도 없다. 하지만 보는 이에게 너무 많은 말과 너무 적은 말을 동시에 전하고 있는 듯하다.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로 불리기도 하는 붉은 입술의 주인공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그렇다는 것이다. 이 소녀는 현재 네덜란드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Mauritshuis Museum)에 소장되어 있다.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1632~1675)가 1666년에 그린 작품이다.
그런데 이 소녀는 우리와 눈을 마주치는 방식으로 내 안의 나를 따라다니면서 들여다보게 한다. 그래서 소녀의 눈길은 자신을 바라보는 이를 떠난 적이 없다. 그 어느 곳으로 이동을 해도 신비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무슨 말인가를 전할 듯이. 아주 간절하게. 그리고 애닯게. 이처럼 말의 침묵이 보여주는 은유는 눈빛으로 듣게 하는 마력이 있다. 자고로 눈은 영혼이 드러나는 마음의 창이라 했다. 그래서 눈에는 진실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말의 홍수 시대인 것 같다. 특히 정치인들의 말은 끝이 없다. 하지만 그 수많은 말 중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썩어빠진 오물투성이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악취가 코를 내두를 정도로. 어쩌면 이런 정도만 해도 양호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살아가기 어렵게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정치 공해 시대라 할 정도로. 이제 몇 달만 지나면 국회의원 선거다. 정치공학적 지형에 따라 이합집산의 진수들이 펼쳐질 것이다.
이질성 정치집단은 물론 동질성 집단에 이르기까지. 이전투구의 혈투가 폭발할 개연성이 도처에서 탐지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대다수 국민들은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는 데도. 총선이 끝나면 이어서 대선이 올 것이고 대선이 끝나면 또 지방선거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대부분의 국민들에게는 직접적 관련성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정치인 자신들과 그 아류들만의 리그이다. 국민들은 투표만 할 뿐이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국민에게 보답하려면 국민을 위한 정치를 잘하란 말이다. 나날이 물가는 뛰고 차가운 겨울은 다가오고 있다.
지금 날뛰고 있는 정치 세력들의 의식주는 단단할 것이지만 대다수 서민들은 기나긴 동절기를 보내기도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프랑스 Marcel Proust 1871~1922)는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고 했다. 그렇다. 아무리 여행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도 바라보는 눈이 새롭지 않으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지금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 그대들의 마음속에 국민에 대한 눈이 전향적이고 발전적이지 않다면 그대들은 그저 좀비일 뿐이다.
상기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처럼 국민들은 비록 말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내면으로는 수많은 말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하길 바란다. 만약 이를 느끼지 못한다면 멀리는 4･19 학생의거, 가깝게는 518민주화운동이 있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 나라의 민초들은 인내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그 의기를 펼쳤다는 것을.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들. 그 자리에 있을 때는 온갖 끗발을 부렸지만 인내하다 지친 민중들이 더이상 못 참고 매를 들었을 때는 허무하게 무너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또한 명심하길 바란다. 아무리 무한권력이라 해도.
시인, 사회복지학박사 /임성욱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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