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우리는 중국 명가들의 주장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런데 그 ‘궤변’ 가운데, “날아가는 새의 그림자는 일찍이 움직여본 적이 없다.(飛鳥之影 未嘗動也-비조지영 미상동야)”가 있다. 왜 날아가는 새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까? 공중을 날아가는 새가 그림자를 드리울 때, 그것을 매우 짧은 순간에 포착했을 경우 그 그림자는 정지한 모습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의 그림자를 포착했을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이고, 이러한 사정은 그림자 전체의 움직임을 포착할 경우에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날아가는 새의 전체 그림자를 이어보아도 역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소 엉뚱하게 들리는 중국의 명가들과 똑같은 주장들이 서양철학에서도 나온다. 고대 그리스의 엘레아 학파. 이 학파의 대표자는 파르메니데스인데, 그는 오직 유(有), 즉 존재만이 있으며 무(無)란 있을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여기로부터 변화와 운동을 부정하는 이론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제자인 제논(Zenon)이 스승의 학설(운동과 변화를 부정하는 이론)을 옹호하기 위해 이상한(?) 논리를 들고 나온다.
“날아가는 화살은 정지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왜 활시위에서 떠난 화살이 정지해 있다고 하는 걸까? 보통 사람들은 화살이 날아간다고, 즉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논에 의하면, 이 화살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날아가는 순간 순간마다를 하나씩 떼어 관찰할 경우, 공간 안의 일정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는 이 화살은 각 순간마다 정지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정지해 있는 각 지점을 서로 연결해보아야 그것은 전체적으로 정지한 화살이 된다. 마치 움직이는 피사체를 카메라로 촬영하면서 수 십 만 분의 1초라는 짧은 순간에 포착할 경우, 그 피사체가 정지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밖에도 제논은 ‘아킬레스와 거북의 경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킬레스(Achilles)는 희랍신화의 영웅으로,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유일한 약점인 발꿈치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고 한다. 이 건장한 아킬레스와 느림보의 대명사인 거북이 경주를 하였을 때, 과연 아킬레스가 거북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거북이 아킬레스보다 100m 앞에서 출발하였다고 가정하였을 때, 아킬레스가 거북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먼저 거북이 있는 지점까지 와야 한다. 그런데 그 순간에 거북은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간다.
다시 아킬레스가 거북의 지점까지 오면, 그 순간에 거북은 조금 앞으로 나아간다. 이런 식으로 하면, 둘 사이의 거리는 가까워질 수 있을지언정 완전히 따라잡을 수는 없다. 제논은 이 예를 통하여, 아킬레스와 거북의 관계에 아무런 변동이 없다는 것, 그리하여 운동이나 변화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세 번째의 예는 걸음과 관련되어 있다. 운동을 할 때에는 항상 일정한 거리를 걸어야 하는데, 우리가 걷는 모든 구간들은 무수히 많은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미터를 100으로 나누면 100개, 1 센티미터를 100으로 나누면 1만 개의 지점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이 ‘무한한’ 거리를 ‘유한한’ 인간이 걸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운동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날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아킬레스는 거북을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 걸음의 경우에도 ‘무한한 지점’이란 관념 속에서만 그러할 뿐, 현실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물론 제논 자신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억지에 가까운 예를 든 것은 그 반대자의 입장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광주교대교수, 철학박사.소설가 /강성률 교수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