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이 이상하거나 아리송한 이야기를 하면, ‘궤변’이라고 웃어넘기는 경우가 있다. 과연 궤변이 무슨 뜻일까? 궤변(詭辯)에서의 궤(詭)는 말을 나타내는 언(言)과 위험하다는 뜻의 위(危)를 합한 글자이다. 그래서 궤(詭)에는 ‘속이다’는 뜻과 ‘헐뜯다’는 뜻이 들어있다. 다음으로 변(辯)은 두 명의 죄수(辛)가 자신이 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이리저리 따져 말하는(言) 모습을 담은 글자이다. 그래서 ‘말을 잘한다’ 는 뜻이 들어있다. 이리하여 궤변(詭辯)이라 함은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따져 보면 이치에 맞지 않는 억지스러운 말’이 된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남의 소를 훔쳐 갔다. 관가에서 그를 잡아다가 왜 남의 소를 훔쳐 갔느냐고 신문하였다.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제가 길을 가는데, 길에 웬 쓸 만한 노끈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노끈을 주워 가지고 집으로 간 것뿐입니다. 소는 잘 모릅니다.”라고 하였다. 길에 떨어진 노끈을 주웠는데, 노끈에 소가 매어져 있는 줄은 몰랐다. 그러니까 소를 훔치려 한 것이 아니고 소를 못 본 것뿐이니, 죄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이 궤변이다.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이 ‘궤변론자’로 불리고 있는 까닭은 그들의 주장 가운데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깨트리는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프로타고라스(기원전 480년-411년)는 이른바 ‘인간 척도론’의 제창자로 유명하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만물의 척도(尺度, 자, 기준)이다. 보통 사람들은 진리의 기준을 사물에 둔다. 분필의 색깔은 항상 하얗다고 여기는 경우이다.
그러나 황달(黃疸-피부색이 누렇게 되고 대소변의 색이 변하는 병)에 걸린 사람의 눈에는 그 (하얀) 분필도 노랗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하여, 황달에 걸린 사람에게 그것이 노랗지 않다고 말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건강할 때는 하얗게 보이는 것이 진리이고, 황달에 걸려 있을 경우에는 노랗게 보이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람이 건강을 회복했을 때에는 다시 하얗게 보이는 것이 진리가 되는 것이지만.
이처럼 진리의 척도는 사물이 아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이다. 똑같은 사물, 동일한 사태일지라도 누구에 의해 관찰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나에게는 나에게 나타나는 그대로이고, 너에게는 너에게 나타나는 그대로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몸이 아픈 사람의 입에는 쓰게 느껴지는 반면, 비록 소찬(素饌-고기나 생선이 들어 있지 아니한 반찬)일지언정 배고픈 사람에게는 산해진미로 다가온다. 우리 속담에 “시장이 반찬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음악을 어르신들에게 들려주면 귀만 따갑다 핀잔을 들을 것이고, 할아버지들이 그토록 듣고 싶어 하는 옛날 곡은 신세대들에게 그저 소음일 따름이다.
또 같은 음악을 같은 사람이 들어도 그것을 듣는 마음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천국의 멜로디로도 들리고, 지옥의 절규로도 들린다. 평소에 좋아했던 사람이 입은 옷이 멋있어 보이다가도 똑같은 옷을 평상시 싫어하던 사람이 입으면 우중충해 보인다. 사랑할 때는 아름답게 보이던 연인의 자태가 그 사랑이 식으면 역겹게 느껴진다. 이러한 경험으로 보아, “진리는 객관적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른 우리들 주관에 있다.”고 하는 주장에도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또 한 사람의 유명한 소피스트인 고르기아스 역시 “A에게는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이 B에게는 씁쓸하게 느껴질 수가 있으며, 이편에는 참인 것이 저편에는 거짓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광주교대교수, 철학박사.소설가 /강성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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